어릴 때는 내 머리가 반곱슬이라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머리를 감고 무스니 젤을 아무리 발라도 부하게 뜨니까........ 무스 발랐다가 다시 감기도 여러 번 했었는데....... 건축학개론을 보고 다시 떠올리며 조금 웃었다.
대학 때는 한 번 큰맘먹고 스트레이트 파마를 해봤었다. 막 뛰니까 머리가 찰랑찰랑해지는데 내 마음도 두근두근하더라고. 아, 머리카락이란 게 이럴 수도 있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머릿결에 타격이 너무 커서 그 다음부터는 안 했다. 반의 반값 할인 행사에 간 거였는데 나중에 머리카락이 부서지더라고....... 다른 미용실에 커트하러 갔더니 어디서 했냐고 빨리 고소하라고 그랬었지. 한상운 고소왕 된 사연으로...... 기사가 뜨진 않았겠군.
아무튼. 잠깐이지만 기뻤다. 평소에는 머리카락에 힘이 넘쳐서 강풍을 맞아도 꿈쩍도 안 한 채 붕 떠 있기만 했으니까....... 그런 아이가 바람결에 흔들리다니 말이야.
근데 서른 넘으니까 머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처럼 막 뜨질 않네? 머리칼도 세월에 잠식되어 기력이 쇠했는지 그냥 그렇게 적당히 뜬 채 얌전해졌다. 어릴 때는 머리가 뜨는 게 싫었는데 막상 안 뜨니까 그것도 섭섭하더군. 있을 때 잘 해줄 걸 하는 생각. 그나마 머리가 안 빠지니까 다행이긴 한데......
머리카락이 뜨질 않으니까 반곱슬 괜찮더라고. 짧게 자르기만 하면 따로 관리할 필요도 없고. 머리 감은 다음 대충 말리면 알아서 모양 비슷한 게 나오니까...... 하지만 머리가 길어지면 여전히 사방으로 뻗치긴 하지.....
아무튼. 오늘 미용실에 가게 된 거야. 두 달만에. 최근 만난 사람들이 다 헤어스타일을 지적했거든.
"너무 웃겨요....."
원래 가던 미용실에 사정이 생겨서 동네에 새 미용실을 골라야 하는데...... 고민 끝에 난생 처음으로 프렌차이즈 미용실에 가보기로 한 거야. 뭐랄까 늘 꿈꾸던 그런 머리가 있었거든.
이거 있잖아. 조지 클루니가 예전에 하던 짧은 머리.
가서 수줍게 조지클루니처럼 잘라주세요, 했지 뭐.
그랬더니 조지 클루니 헤어스타일이 종류가 많은데 어떤 걸로? 최근 영화에 나온 머리요? 하고 묻더라고.
아마 이런 머리모양을 생각한 거 같애. 이것도 나쁘진 않은데 흠. 아무튼.
그래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줬어. 그러자 이거 제일 흔한 머린데...... 하면서 서양 애들이 많이 하는 머린데 어울리실지 모르겠다, 두상이 예뻐야 되는 머린데, 하지만 정 원하신다면...... 하더니 자르기 시작했지.
조금 자르고선 머리를 상하좌우 꾹꾹 눌러보더니 놀란 목소리로 어라? 두상은 예쁘시네, 하는 거야. 역시 프렌차이즈...... 이런 것도 메뉴얼에 있겠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두상은 괜찮아. 다들 그랬어. 우리 엄마, 구여친...... 음....... 참, 옛날 군대 동기도 그랬지. 스포츠마사지를 배운 친구였는데 훈련소 때 조교가 마사지 잘 하는 놈 손 들어! 했을 때 손 들고 밤마다 조교들 마사지를 하러 갔었던 녀석이었어. 마사지 열심히 해주면 편한 부대로 빼준다더니 나와 함께 강원도 산속 미사일부대로 갔지. 그 친구가 제대하던 날, 너무 기분이 좋았는지 집에 가는 버스에서 동기들 목과 머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으로 내 머리랑 목을 눌러주더니 그러더라고.
"야..... 너 머리 진짜 크다...... 내가 마사지해준 애들 중 제일 커......."
음.... 칭찬이 아니었나. 이 뒤에 뭔가 칭찬 비슷한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표현이 안 떠오르네. 아무튼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고.
다 자르고선 이리저리 보더니 의외로 괜찮네요, 하는 거야. 솔직한 사람이지.
근데 내가 보기에도 괜찮더라고. 이제 뿔테안경을 하나 사려고.
이런 느낌이면 좋을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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